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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보려면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혹독함이 필요하다. 

인식하는 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어떻게 만사에 겉으로 드러난 근거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을 터인가!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산을 오르는 이는 언제나 두 가지를 동시에 마주한다. 하나는 발밑의 땅, 다른 하나는 저 멀리 보이는 시야이다. 그러나 그 시야가 끝내 열리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시야를 가리는 것은 산의 높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자기 확신, 자기 욕망, 자기 판단, 자기 동정, 자기 연민—이 모든 ‘자기’가 시야 앞에 두꺼운 막을 드리운다. 세상을 더 많이 보려면, 먼저 자신을 잠시라도 비워낼 줄 알아야 한다. 그 비움이야말로 모든 인식의 출발점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시선은 결코 깊은 곳에 닿지 않는다. 표면에 고착된 시선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생성과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한다.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다. 이 흐름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이미 갖고 있는 관념을 잠시 내려놓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낡은 생각을 벗어나는 일, 익숙한 시선을 포기하는 일, 고정된 기준을 해체하는 일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고통 없이 새로운 높이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세계에 대한 더 넓은 시야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안의 중심을 흔들어야 한다. 흔들림 없이 새로운 것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놓아 버린다”는 것은 존재의 더 넓은 가능성을 향해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또한 인식은 단순히 많이 보는 데서 오지 않는다. 보는 방식을 바꾸는 데서 온다. 눈에 보이는 것만 의존한다면, 한계 범위 안에서만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크고 더 깊다. 어떤 사태의 표면을 넘어서 그 밑에 흐르는 의지, 힘, 긴장, 갈등,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난 유연함이 필요하다. 

결국

자신을 잠시 비워낸 사람만이 세계의 넓이를 경험한다. 자기 확신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새로운 진실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