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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관습적인 도덕을 벗어난 ‘나만의 선(善)’을 세우고, 그 선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고 요구한다. “그대의 덕은 친밀하게 이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고매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덕이 윤리 규범이나 사회적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 가다듬어 얻은 고유한 가치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름 붙일 수 없다는 말은 덕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모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너무 개인적이고 너무 깊어서, 외부의 언어 체계가 그 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진정한 덕은 개인의 삶의 결을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외부에 쉽게 설명되거나 평가될 수 없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동시에 말한다. “그 덕에 대해 부득이 말할 수밖에 없을 때에는, 더듬거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주변의 공감을 얻기 위해 언어를 다듬는다. 하지만 깊은 덕은 타인의 기준으로 해설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해받기 위해 번역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번역 과정 자체가 덕의 고유함을 훼손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차라투스트라는 그 더듬거림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진정한 덕은 언어적으로 화려한 것이 아니다. 

니체는 이렇게 선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은 나의 선이고, 나는 이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내 마음에 쏙 들며, 오직 나 혼자만이 이 선을 원한다.” 여기서 니체는 ‘개인의 선’이라는 개념을 극단적으로 언급한다. 그는 도덕을 보편적 규범으로 규정하려는 전통적 윤리를 해체한다. 대다수가 따르는 ‘좋은 것’에는 힘이 없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에서 솟아난 가치가 아니다. ‘선’은 반드시 고독한 선이다. 오직 나만이 그것을 원하고, 오직 내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그것은 진정한 가치가 된다. 

이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묻는다. 우리는 정말 ‘나만의 선’을 가진 적이 있는가? 혹은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오늘날의 삶은 끊임없는 비교와 타인의 평가 속에 놓여 있다. 스스로의 기준을 찾기보다, 만들어진 기준 속에서 자신을 끼워 맞추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이때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날카로운 도전이 된다. 나의 선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면, 나는 과연 나로서 살고 있는가? 타인의 가치 체계를 되풀이하면서도 그것을 ‘덕’이라 부르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