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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탈을 일삼는 사자가 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제시한 세 단계의 정신 중 마지막 단계는 바로 ‘어린아이’이다. 낙타가 짐을 짊어지고 인내로 자신의 사막을 건너갈 때 정신은 무겁고 참을성이 있지만, 그것은 아직 타인의 가치와 명령을 짊어진 상태이다. 사자는 이러한 가치에 도전하며 “나는 원한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한 존재이다. 그는 더 이상 ‘너는 해야 한다’라는 외부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저항하고, 기존의 도덕을 전복하고,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굴레를 찢어버린다. 그러나 사자의 힘만으로는 새로움을 창조할 수 없다. 사자는 부정의 힘, 즉 파괴의 힘은 가지지만,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힘은 없다. 그래서 정신은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어린아이로의 변형이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다. 이것은 세상 경험이 부족한 순진함이라는 뜻이 아니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며 여전히 열려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어린아이는 어떠한 도덕적 굴레나 사회적 평가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그에게 세계는 이미 완성되었거나 고착된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놀이터와 같다. 사자가 기존의 가치 체계를 무너뜨렸다면, 어린아이는 무너진 그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놀이하듯’ 창조한다. 순진무구함은 바로 이 창조력을 가능케 하는 내적 공간이다. 때 묻지 않은 마음, 숨겨진 계산 없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은 새로운 출발의 토양이 된다.
또한 어린아이는 ‘망각’의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망각은 흔히 인간의 약점으로 여겨지지만, 니체에게 망각은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적극적 능력이다. 사자가 파괴한 모든 낡은 도덕과 억압적 가치들은 여전히 인간의 마음속에 잔재를 남긴다. 과거의 후회, 죄책감, 상처와 기억은 새로움을 향한 움직임을 방해한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의 순간을 살며, 어제의 무게로 오늘의 가능성을 줄이지 않는다. 망각은 과거를 지우는 능력이 아니라, 과거가 미래의 자유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신의 건강한 기능이다. 이는 창조적 존재가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힘이다.
니체는 어린아이를 ‘유희’와 연결시킨다. 어린아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재미있기 때문에 놀이한다. 아이에게 행위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기쁨이다. 삶을 목적 달성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로 바라보는 시선은 창조적 정신의 핵심이다. 사자는 “나는 원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투쟁과 긴장 속에 있다. 반면 어린아이는 그 긴장을 넘어선다. 그의 존재는 삶을 긍정하는 순전한 움직임이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약이다. 유희의 정신을 통해 인간은 삶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어린아이는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이다. 이는 자기동력적 존재, 외부의 명령이나 억압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 충동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를 뜻한다. 사자 단계에서는 여전히 외부의 가치를 부정하며 싸우는 힘이 중심이지만, 어린아이 단계가 되면 싸울 필요조차 없어진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 삶을 스스로 굴려 나간다. 이는 수동적 흐름이 아니라, 내적 충만함에서 비롯된 능동적 움직임이다. 움직임의 출발점이 외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점에서,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최초의 움직임”이다. 이는 단순히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존의 모든 목적과 규범을 넘어선 창조의 힘을 지닌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질문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걸음은 세계를 새롭게 열어젖히는 창조적 순간이며,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이다. 이 최초의 움직임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 가치의 창조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는 “성스러운 긍정”을 구현한다. 사자의 힘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지만, 어린아이의 힘은 “예”라고 말하는 힘이다. 삶의 모순, 고통,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모든 것에 기꺼이 긍정할 수 있는 태도이다. 이는 단순히 낙관주의나 현실 수용이 아니라, 삶 전체를 끌어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기뻐하는 깊은 승인이다. 이러한 긍정은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
결국 사자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파괴만으로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자는 해방을 이끌지만, 어린아이만이 창조를 가능케 한다. 어린아이는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세상에 부여하는 존재이다. 사자가 외부의 억압을 끊어낸다면, 어린아이는 자유의 공간 위에서 새로운 세계를 빚어낸다. 그것이 니체가 말한 “성스러운 긍정”이며, 인간이 진정 스스로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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