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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완성하는 자는 희망에 부푼 자들과 맹세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죽음을 맞이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삶을 완성하는 자가 마지막 순간을 “의기양양하게” 맞이한다는 니체의 이 문장은, 죽음을 정점으로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다. 죽음은 한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책임지고 달려온 온 자만이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생이 하나의 작품처럼 완결되었기에, 그 종막 또한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 니체가 말하는 ‘삶을 완성한 자’는 자기에게 던져진 운명과 조건들을 회피하지 않는 인간이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희망에 부푼 자들과 맹세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언젠가 더 나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함 속에서 살아간다. 맹세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다짐을 남발하며 그것을 통해 현재의 결핍과 불안함을 덮으려는 태도이다. 희망에 부푼 사람과 맹세하는 사람은 둘 다 아직 “현재의 자신” 위에 굳건히 서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삶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이다.

반면, 삶을 완성한 자는 미래에 기대어 현재를 회피하지 않는다. 그는 매 순간을 자기 손으로 세웠으며,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전체로 바라본다. 니체가 강조하는 이러한 ‘전체성’은 그가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는 확신이 있을 때, 죽음은 그 흐름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완성하는 정점이 된다. 죽음은 삶을 정당화하고 완결하는 궁극의 고리이다. 

이 문장은 니체의 ‘아모르 파티(운명애)’ 사상을 깊게 반영한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의 고통·혼란·실패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삶을 완성하는 자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에 기대지 않으며, 현재의 자기를 긍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