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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讀)

운명을 받아들이기

지하인 2025. 11. 1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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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 속 문장,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과 다투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여야만 평화로울 수 있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싸울 필요가 없는 것과 싸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종종 “운명과 싸워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 자체는 의지를 장려하지만, 마르케스가 말한 문장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리킨다. 우리가 싸우는 대상을 잘 살펴보면, 그것이 결코 바꿀 수 없는 삶의 조건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부모, 과거의 사건, 타고난 기질, 이미 지나간 시간, 이미 닫힌 관계, 이미 결정된 외부 상황 등은 노력으로 뒤집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애써 부정하고,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발버둥치며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싸움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된다. ‘왜 나는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는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와 같은 질문들 속에서 분노, 억울함, 원망이 커지고, 그 감정들이 끊임없는 갈등을 만든다. 마르케스가 말한 평화란 바로 이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운명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며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나의 내면’과 싸우던 전쟁을 멈출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수용’을 패배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가장 큰 용기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반응하지 않는 힘이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넘어선 시선으로 삶을 다시 읽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겸허함
  •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
  •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나를 세우는 지혜
  • 불필요한 저항을 멈추는 자기 절제

라고 할 수 있다. 

즉, 수용의 태도는 삶 앞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태도’이다. 변화할 수 없는 것과 변화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마음에서 수용은 시작된다. 이 구분을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삶을 통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삶을 ‘안내하는 지혜’를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다.

  • “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이 고통을 어떻게 성장의 재료로 바꿀 수 있을까?”

수용은 오히려 능동적인 삶의 첫 단계가 될 수 있다.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왜 나는 그때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는지,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되지 못하는지,

왜 내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지,

왜 나는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지—

이런 자기 비난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러나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기 비난을 멈추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 더 이상 많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나’를 받아들이며, 그 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평화는 이런 자기 용서에서 시작된다.

운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마르케스는 바로 이 지점을 이야기한다.

운명과 싸우지 않는 사람은 평화를 얻고, 평화를 얻은 사람만이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