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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의 『율리시스』 마지막을 장식하는 “예(Yes)”는 인간 존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그것은, 심연을 지나 다시 떠오르는 생명의 의지에 대한 고백이다. 소설은 하루 동안의 더블린을 그리는 글이지만, 그 결말에서 조이스는 복잡한 실험적 문체, 정신의 흐름, 언어의 뒤섞임을 모두 뒤로하고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단 하나의 단어, “예”를 제시한다. 이 “예”는 지성보다 먼저 뛰는 심장이 외치는 것이며, 세계를 다시 받아들이는 동의를 의미한다.
몰리 블룸의 독백은 기억과 욕망, 상처와 생의 감각이 한꺼번에 뒤섞여 흐르는 내면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흐름의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거절이 아니라 긍정을 택한다. “내 심장이 ‘예’라고 말하는 것을 느꼈고.” 조이스는 긍정을 의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종종 논리나 계산을 초월한다. 판단보다 빨리 뛰는 심장은 때때로 진실을 더 정확하게 가리킨다.
이 “예”는 또한 타자에 대한 허락이기도 하다. 삶은 언제나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행위로 완성된다. 사람은 타자와 엮이며 상처받고 기뻐하고 때로는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몰리의 “예”는 타자의 불완전함을 포용하고, 그와 더불어 삶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온전한 관계는 “예” 위에 세워진다. 완벽하지 않은 상대에게, 불확실한 내일에게, 때때로 어긋나는 현실에게 다시 “예”라고 말하는 것이 관계를 지속시킨다.
상실, 배신, 실패, 지루함, 우울함—이 모든 것은 삶을 향한 부정의 힘이다. “예”라고 말하는 순간 인간은 다시 삶의 편에 선다. 몰리의 “예”는 운명에게, 과거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긍정의 선언이다.
우리는 종종 삶을 버겁게 느끼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듯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에도 인간은 다시 “예”라고 말하는 존재다. 작은 기쁨, 사소한 기억, 누군가의 손길, 새벽 공기의 냄새 같은 일상 속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삶에 동의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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